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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재외국민자녀, 길을 찾다” 네팔, 인도편 보고서
    ICTRC_letters 2017. 3. 10. 13:32

    문화오감연구소_004_online.pdf



    화오감센터의 프로젝트 1을 발동합니다. 오랫동안 생각만 해왔던 일이 실제로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문화오감센터를 생각했을 때, 오고 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경쾌하고 가벼운 공항에서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기대감 대신 두려움을 가진 기름처럼 분리된 점들의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 돌아올 일정이 있는 이들과 달리 이 땅에 머문 자신의 또래가 고민하지 않는 고민을 안고 낯선 땅에서 생존해야 할 이들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한 번쯤 짚어주고, 미래의 자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낯선 자신의 모습 대신, 보편적인 세상 속의 낯익은 존재를 발견하는 시간을 꾸며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첫 발자국이 “길을 찾다” 프로젝트입니다.  

    “2017 재외국민자녀, 길을 찾다”

    그동안 선교사자녀들에게 강의했던 대학진학이라는 주제를 넘어서, 좀 더 큰 그림,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함께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신자유주의와 가난, 개인의 고립과 생존, 그리고 다양성의 차별이라는 도전 속에서 우리 자녀들이 걷게 될 길이 무엇인지를 불편한 시선 대신, 긍정적인 시선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계획해 보았습니다. 

    세계의 국경선이 자본에 의해 약화되고, 기존의 기득권이 만들고 있는 울타리 속에서 생존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문화를 넘나드는 생활의 경험은 지구촌 사회의 생존에 유리한 강점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빠르게 해체된 근대 사회와 후기 근대 사회의 다양성이 도드라진 오늘의 시간에 살아가는 소위 The Third Culture Kids(TCK) 모습을 재구성하는 것은 “길 찾는” 프로젝트의 시작점에서 적절한 시도가 아닐까요? 그래서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수용한 TCK에 대한 신화적 요소를 짚어보고, 현실에 두 발을 내딛는데, 주변과 함께 걸어갈 수 있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는 네팔, 인도편 보고서로 준비했습니다.


    1. TCK, 21세기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다. 

    각해보면 어떤 현상 또는 사물에 대한 정의는 그 시대적 배경이나 환경들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시작했습니다. TCK에 대한 정의가 발현된 시기는 미국 사회의 이민자 법안이 통과된 시기이면서, 동시에 흑인 인권을 통한 미국의 정체성을 재구축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는 TCK를 정의할 때 “문화”란 국경선과 언어에 깊은 연관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오늘날 문화는 보다 깊이 있게 분화되고 정의되곤 합니다. 일본 히로시마 대학에서는 문화의 다름을 세대로 구분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문화라는 단어를 듣는 처지에서는 자신이 사는 곳이 소위 단일언어권, 단일 인종을 강조하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다른 이해를 보이기도 하니, TCK라는 단어 하나를 정의할 때 좀 더 섬세하게 다가설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 MK의 정체성을 TCK의 관점에서 접근한 첫 논의, 1993년의 MK 컨설테이션을 좀 더 살펴봐야 하겠죠. 1993년의 한국은 1980년대 경제적 성장과 냉전 시대의 붕괴를 알린 1988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사회적으로는 군사 독재의 청산과 민주주의 체제의 실현 등으로 자신감이 넘치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우리의 자신감은 국제 사회의 활동과 러시아 지원, 기독교적으로는 선교적 열망의 실현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 입장 속에서 다시 1993년 컨설테이션에서 언급된 MK의 3가지 정체성, 한국인, 국제인, 신앙인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합니다. MK의 정체성은 한국인의 자부심, 영어 소통, 그리고 종말적 신앙이라는 당시의 한국 사회의 관심과 이어져 있으며, 국제 사회에 이바지하고 이끄는 한국 사회의 지도적 역할입니다. 그것이 데이비드 폴락이 제시한 TCK를 바탕으로 볼 때 MK의 가치는 한국의 국제화에 이바지할 잠재력으로 읽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잠재력”이라는 그 단어를 너무나 긍정적으로 본 나머지, 세계의 흐름과 한국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남발된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부분은 좀 더 공부해야 하겠지만, 자신을 스스로 이해하며 속하고자 하는 사회/집단을 향한 “소속감”과 그 사회/집단의 관성적 정체성인 “성원감”을 구분하여 재입국과 정착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1993년에 정의된 한국적, 국제적, 그리고 세계화라는 단어가 20년이 넘은 오늘까지 같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님에도 마치 정형화된 것처럼 다뤄왔다는 점은 반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번 세미나에서는 MK와 한국 사회를 바탕으로 대략적으로나마 부모님들과 생각을 열어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이번 세미나에서 국가와 인종이라는 거대 개념(이면서 또한 관념적인)보다 좀 더 미시적인 입장에서 현실적인 정체성을 제안했습니다. 아이들이 부부 사이에 등장하고 개입함으로 갖게 된 “부모”라는 정체성이 부여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또 동시에 성원 각각의 정체성을 경험하고 배우며 갱신하는 유체적 특징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2. 진학에서 진로 찾기로 가는 여정   

    어령 선생님께서 미래는 약속하면 예측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번 강연을 준비하면서

     '학교는 미래를 약속하는 곳이며, 교육이란 오늘과 미래를 이어주는 행위'

    라고 정의해 봤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돌아봤을 때,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교육의 환경이 존재하지만, 교실에서 학교의 가치에 약속을 걸고 미래를 꿈꾸는 학교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교실에서는 미래를 약속하는 가치를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해애쓰는 교육기관들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친구들끼리 미래를 약속하는 예도 적잖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가치들을 사회가 존중해 줄 수 있다면 미래는 그렇게 찾아올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관계성은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배움의 공동체라는 단어도 비로소 자리를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학교란 지식을 축적하는 장소이자, 자녀의 미래를 보증하는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라, 철학과 배움, 그리고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엮어진 동반자들의 공간이라는 점을 되새겨 봅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정작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는 오늘이기에,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을 빌어 진로의 목적을 짚어봤습니다.

    많은 이들은 여전히 대학의 길을 묻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현실 속에서 사회에 들어가는 중요한 관문이자, 사회관계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이곳의 아이들에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모두 똑같은 길을 걸을 수 없고, 똑같은 관계 속에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는 관계의 실상은 단지 사회가 매기는 평가 가치의 높고 낮음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 간의 관계가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길의 가치도 더 좋거나 덜 좋은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독특한 가치의 삶, 그리고 그 가운데만나는 관계의 진정성에 따라 열리는 삶, 바로 그것입니다. 만약 대학이 사람의 관계 질을 결정하는 것이라면, 이미 우리의 마음에 사람의 가치를 대학으로 결정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을 보자면, 대학은 단지 통과하는 길 일부이며, 각각의 고유한 관계가치가 연속되는 삶의 한 지점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대학이 긍정적인 미래와 인격의 가치로 여겨지는 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만든 욕망의 상징이자 사회 관습의 적폐입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좀 더 강조되어야 할 부분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보다 대학에서 이뤄질 배움과 관계, 그리고 사회 진입에 필요한 적응을 위한 준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별히 해외에서 학교를 나온 학생들에게 재진입을 한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그렇기에 다른 문화 배경의 사람들과 관계 맺기, 다른 문화의 아이들과 어울리는 과정은 매우 중요한 배움이 됩니다. 대학진학은 진로의 한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찾아가는 여정이지,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모든 학년에 똑같이 권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10학년까지는 상호관계성을 중심으로 한 배움의 과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3. 주변과 함께 걸어가기. 배움의 “관계”와 “태도”

    인이 소유한 지식과 능력은 미래를 풀어가는 중요한 역량이긴 하지만, 그것이 작동할 장(Field)을 고려한다면 뜻밖에 다른 요소들이 더 우위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만나고, 그에 대해 반응을 합니다. 그때마다 우리의 상태, 환경,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이런 태도의 차이는 다른 의미에서 서로가 연결된 세상이면서 각 개인이 지닌 능력과 힘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배움이라는 과정에서 나의 역량과 관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나/우리의 유익이라는 이기적인 힘을 너무 간과한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이 부분은 평가의 측면이 너무 강조되면서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카투만두 국제 학교 풍경

    4. 다중지능이론. 하나의 길에서 다양한 길로   

    번 여정에서 태도와 가치를 언급했으니, 그것이 실제로 우리 자녀들의 미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하워드 가드너는 다중지능이론을 제시하면서 기존의 인지와 논리 지능의 평가 관점을 비판합니다. 가드너 박사는 "한 문화권 혹은 여러 문화권에서 가치 있게 인정되는 문제를 해결하고 산물을 창조하는 능력"을 지능으로 정의하면서, 아이들의 잠재력을 다양하게 찾을 것을 제안합니다. 여기에서는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세계의 교육 현장에서 일어났음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지식의 소유가 힘이 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보의 보편성은 출판과 세계 경제의 호황 속에서 일어났고, 소유에서 실천과 확장으로 전환됩니다. 그리고, 온라인의 확장과 같은 기술의 발전과 고등 교육의 보편화 같은 사회적 현상을 바탕으로 교육의 관점은 지식을 소유하는 것에서 문제 해결 능력으로 바뀌게 됩니다. 

    교육 방식과 그 질이 아이들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다양한 문화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은 해외에서 성장하는 한국 아이들에게 축적되는 지능입니다. 곧 선교사자녀들이 경험하는 일상의 삶은 곧 지능이라는 맥락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MK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 탁월하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 세상 속에서 이바지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며, 가드너 박사의 다중지능이론은 이런 경험들을 다루는 데 유용합니다.

    헤브론 국제 학교 풍경

    5.세상을 이해하기. 개인의 성공에서 함께 삶으로 움직이기   

    지막으로 제가 다루려는 주제는 공동의 생존입니다. 우리의 삶은 개인의 능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이 연결되고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이제는 다양한 존재의 상호작용의 목표, 이어령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미래의 “약속”을 어떤 기준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저는 이를 위해 첫 번째로 기독교의 “복음”에서 기준의 근거를 찾습니다. 기독교 선교의 핵심 가치는 하나님 나라이며, 그 나라에서는 삶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우리의 일함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 하심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복음이란 바로 하나님의 통치와 우리의 회복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되었음을 전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오늘과 내일의 약속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오늘은 현재 사는 삶에서의 회복이며, 내일이란 완전한 그분의 통치 시대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오늘이라는 시간의 세계를 살펴보면, 과거보다 빈부의 격차가 심화하고,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지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술의 진보는 노동의 환경을 바꿨고, 사람들의 삶과 그 가치도 바꿔가고 있습니다. 부유한 사회 속에서 빈곤의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오늘날의 소식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빈곤을 메꾸고, 개인의 존엄, 노동의 가치가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의 소비가 사람의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존재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소비로 매겨지는 가치 대신, 존엄을 갖도록 나누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에 대한 근거는 창조세계의 조화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창조 기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피조 세계의 상호 관계성은 마지막 하나님의 다시 오신 세계에서 다시금 확증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인 모습을 선언한 계시는 우리가 실천해야 할 가치가 되며, 교육 현장에서 선언해야 할 미래의 “약속”은 이를 근거로 실천적인 삶의 모습으로 구현시켜야 합니다. 이 상호 관계성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질서와 조화를 모델로 한 회복되는 우주 세계의 “공존”이라는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우리가 얽혀진 삶의 관계성에서 찾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타인의 손길이 없으면 오늘의 우리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서비스 모두가 타인이라 정의된 사람들의 손길로 이뤄진 결과입니다. 비록 우리가 현물가치라는 것으로 이를 측량하지만, 그것만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들이 존재합니다. 바로 이런 손길, 지급되지 않은 가치가 매 순간의 생활을 가능케 합니다. 이를 “사회적 빚”이라 부르더군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우리 자녀의 존재로 인해 누군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부분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관계성의 측면은 우리가 서로를 돌아볼 근거와 필요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소비 중심의 현대 사회에서는 더 많은 소비를 요구합니다. 반면에 나눔 중심의 사회는 소비로 인한 고갈과 차별이 아닌 평등과 재생, 그리고 가치 중심으로 전환되지요. 

    이번 방문에서 나름대로 관심을 두고 노력한 부분은 더 나은 사회의 그림을 약속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길의 목적지가 되고,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은 무엇인지를 부모와 자녀들이 관심을 가지고 진로를 고민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사실 대학에 진학하는 기술적인 것은 저보다 학교와 교사, 그리고 당사자들이 더 잘 아는 부분입니다. 물론 아이들이 보여준 반응,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서 프로그램으로 개발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을 좀 더 내어두는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대학 진학이 힘들어서 우리가 모두 조급해진 건 아닌가? 어쩌면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배움을 즐기는 것이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관계를 즐겨야 하는 게 아닐까? 결정해야 할 시간까지 조급함, 다급함으로 자기 자신에게 채찍질하기보다 주어진 환경을 누리면서 자신을 탐색하는 자유로운 시간이 더 필요한 건 아닌지 묻게 되었습니다.


    6. 양희은의 노래 “엄마가 딸에게”에서 만나는 양육의 길. 놓아주기.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 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모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양육 세미나에서 나름의 방점은 아마도 가수 양희은씨가 발표한 “엄마가 딸에게”라는 음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번에 상영했던 영상은 양희은씨와 악동뮤지션이 부른 버젼인데,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가 실감있게 나타납니다. “너의 삶을 살아라”라는 가사는 누적된 불통의 관계를 향해 엄마가 먼저 화해의 메시지를 던지면서, 자녀의 주체성을 비로소 인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선교사들은 이를 보면서 과거로 돌아가 지금의 자녀 시절에 동일하게 겪었던 상처를 불러내고 화해하는 시간을 가졌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결국 이를 마지막으로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은 자녀의독립, 주체적 삶을 위해 놓아주는 것으로 강의를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7. 앞으로의 과제

    번 강좌가 국제학교라는 상황을 상정하고 준비했던 터라, 주로 교실 속의 문화 배경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단 문화 속 소수자로 사는 현지학교의 한국 학생들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각 나라, 지역, 또 마을마다 성원감과 소속감의 발현은 다를 것입니다. 물론 제가 고려한다고 했더라도 각 문화 속에서 관찰할 능력이 없었기에 큰 차이는 없었을 겁니다. 다만 선교사라는 일 그 자체가 현지 문화 속에서 삶을 통해 문화를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일이며, 이를 근거로 복음의 가치를 세워가는 실천적인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과정이 현지 문화의 성원감과 소속감을 찾는데 가장 최선을 길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자면, 현지인 교육 모델을 구축하시는 선교사님들과 함께 대안을 찾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문화오감센터에서 이 영역을 접근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들을좀 더 숙고해 볼 예정입니다. 

    두 번째는 이번에 방문한 두 선교사자녀 학교 모두 재정과 자원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 원인들은 다르지만,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했다는 점은 같습니다. 국제학교의 재정적인 어려움은 지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계속 경고되었던 부분입니다. 여기에는 단순히 파송국에서의 모금이 힘들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선교지 국가의 정치적 기류와 갈등, 국가 체제의 전환 또는 현지 국가의 반기독교적 정서, 현지 사회 상황으로 인해 NGO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 그리고 현지 학교와의 형평성을 고려하는 움직임 등 다양한 원인이 존재합니다. 이에 대해 기존 학교의 체질을 개선하는 부분에 대한 부분을 고려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근본적인 교육에 대한 고민과 학습자 중심으로 전환된 교육철학과 교수법을 포함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선교사자녀 학교마다 비서구인이면서도 학생 정원에 최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만약 학교가 일반 국제학교로 전환되거나, 서구 교사들이 떠났을 때, 또는 최악의 경우 학교가 폐쇄되었을 때를 상정하여 적절한 교육방법을 준비해야겠지요. 

    세 번째는 국제학교가 제도적으로 배려해서 한국 학생들이 한국으로 들어올 준비를 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부분입니다. 국제학교의 경우 학습언어가 주로 영어입니다. 그렇지만 학생 구성원으로 본다면 비영어권 배경의 학생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비영어권 학생들은 진로를 위해 대학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모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부족하거나 충분한 배려가 이뤄지지 못합니다. 학교마다 비영어권의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차이가 있는데,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학교의 배려를 좀 더 기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 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정보와 기술들을 지원하고 제공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국내에서 이런 자원을 발굴하는 것이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만난 상당수의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꿈이나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어려워한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한국 사회와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한국과 달리 선교지에서는 많은 것을 보거나 시도할 수 있는 환경적인 부분이 열악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꿈과 좋아하는 것을 질문할 때면 질문하는 저 자신도 어떻게 이후의 과정을 풀어가야 할지 난감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진로 탐색이나 자기 유형을 살펴볼 수 있는 테스트들을 들고 가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지의 특수한 상황 그 자체가 미래에 자신이 할 영역을 찾는 좋은 기회임에도 간과되는 것도 너무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 부분도 현지의 자원들을 조사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볼까 합니다. 선교사님들이 본인 사역에 너무 바쁘니 자원을 모아 정리하는 일은 아마도 문화오감센터의 몫이 되겠지요.  


    8. 결론. 한국 음식?

    럼에도 아이들은 이런 피드백을 보냈습니다. 

    “한국음식이 먹고 싶어요.” 

    “다음에 꼬옥 한국 음식(과자류) 가지고 오세요.” 

    그들에게 있어 저는 아마도 그리운 한국의 어떤 것들이었나 봅니다. 한국 음식, 자신들을 생각한 한국인 삼촌, 한국말 수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저는 제가 생각한 목적 “진로”를 너무 들이댄건 아닌지 약간 후회가 됩니다. 다음 방문에서는 좀 더 비용을 들여서라도 한국 음식들과 그리움의 것들에 우선권을 삼아보려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인도와 네팔에만 그치지는 않을 겁니다. 저 역시 그동안의 관계성으로 이뤄진 여러 연결망들을 기반으로 한국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MK들이 미래를 사는데 필요한 디딤돌 역할을 할 것입니다. 다만 가정주부라는 저의 삶의 위치가 어디까지 운신의 폭을 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내와 두 딸의 지원과 격려 없이는 어렵겠지요. 저 역시 제 두 아이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우면서 또 부모를 떠나는 길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오감센터는 함께 결정하고, 또 함께 배우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가족 공동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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