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다문화주의와 TCK 관계
    연구소 2018. 7. 16. 10:26

     

    다문화주의를 설명하는 그림(출처: 모두 다문화야!/최영민/풀빛/2018)입니다. 다문화주의는 고전적으로 미국같은 국가/민족별 이민사회를 설명하는 것으로 문화적 동등성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미국은 백인(앵글로 색슨), 기독교(개신교)가 전체의 문화를 상징하고 기준하는 주도성(엄밀히 말하면 기준성)이 됩니다. 그러니까 미국 다문화주의는 동화주의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내 상류 계층은 철저히 혈통과 배제를 근거로 합니다.

     

    또 동화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는 사실 세속국가를 실현하는데 소위 신성로마제국, 카놋사의 굴욕, 아비뇽 유수에 이르는 종교와 왕권의 갈등, 이후 100년전쟁을 통한 절대 왕정의 형성을 배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세속국가화는 종교와 절대왕권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이는 프랑스혁명이후 공화정이라는 독특한 정치체제를 구축하고 이를 '계약'으로 근거하여 오늘날 프랑스의 기초가 됩니다. 동화주의는 계약에 동의한 이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사회의 정치적 관점일 가능성이 크고, 공화주의 정치체제와 잘 어울립니다. 물론 이론적이고 상상의 이야기입니다. 2005년 파리 폭동이후 프랑스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었습니다. 프랑스는 백인과 기독교(가톨릭)이라는 특정 조건을 기반으로 한 민족주의, 인종주의를 내포한 동화주의가 작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다루는 차별과 배제는 민족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독일을 상징합니다. 독일이 이렇게 된 배경에는 역시 신성로마제국 이후 100년전쟁이 휩쓸고 간 이후 신구교간에 이른바 30년 전쟁이 휩쓸고 가면서 독일 인구의 1/3이 사망하였고, 피폐화되어버려 다른 유럽 왕국들에 비해 뒤쳐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18세기에 들어와서야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통일 독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알퐁소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바로 이 시기에 프랑스가 패배하여 알자스와 로렌 지역을 독일에게 내어준 것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독일의 민족주의가 그 중심에 위치하게 됩니다. 그렇게 혈통을 내세운 독일의 가치관은 1960년대 급격한 경제 성장에 필요한 노동력을 외부로부터 데려오는데 작동하여, 이민 불가한 순환 노동자 정책을 취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고용주(독일)가 필요한 건 숙련공이지 초보자들이 아니었다는 점, 고용인(주로 터키)은 자국보다 나은 경제적 지위와 사회적 보장을 얻고 싶었던 욕구가 맞아 떨어져 결국 연방정부의 정책은 실패로 끝납니다. 이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 21세기에 들어와서 입니다. 그러니까 차별과 배제는 연방정부의 구상이었지만 지방정부와 고용주는 현실적인 이유로 그들의 영주를 묵인하였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위의 그림은 정치적 의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문화주의 만세!” 인거죠. 그러나 다문화주의를 표방한 국가들은 최근 반이민정책을 주장하는 극우주의가 정치적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캐나다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캐나다의 역사를 훑어보면 그 배경을 살짝 엿볼 수 있는데, 여기선 다루지 않겠습니다.)

    이런 긴 설명을 한 이유는 앞으로 다루게 될 TCK(Third Culture Kids)라는 제 3문화 아이들이라는 개념이 갖는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 입니다. 물론 그걸 여기서 다 이야기하지는 않고, 앞서 살펴본 사회화 과정, 문화, 국가 체제를 이루는 데 제시된 세 가지 시선을 바탕으로 보고자 합니다. TCK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50년대로, 인도에 있었던 미국국적자들을 대상으로 한 미국인(Ruth Ussim)의 연구에서 등장했습니다. 그 연구 결과를 토대로 데이빗 폴락(David C. Pollock)은 인터렉션(Interaction, 1964)을 세우고, 선교사자녀(MK)와 재외거주 미국인 자녀를 대상으로 교육적 필요와 정서적 돌봄에 관한 일들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배경은 다음의 추론을 가능하게 합니다.

    "1950-60년대 미국 사람들 가운데 해외 이동이 가능했던 이들은 다수가 미국 중산층을 상징하는 기독교, 백인(앵글로색슨), 그리고 더 나아가 해외 여행이 가능했던 엘리트 계층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TCK의 개념에는 그 시대의 엘리트와 종교적 대의에 따른 헌신을 상징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데이빗 폴락은 그의 책에서 “특권을 누리는 라이프스타일(47)”이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를 ‘다문화주의’ 시선으로 보면 엘리트 계층 문화적 특성을 가진 해외 성장 경험을 가진 문화적 집단입니다. TCK논의는 TCK가 문화적 경계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이들의 문화가 미국의 문화적 다양성 속의 하나가 되어 융화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심리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고전적 TCK 개념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하면 지금의 분들 가운데 상당수가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오늘날의 모국 외에서 성장하는 이들을 TCK라는 울타리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는 특수 계층만이 문화적 이동을 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생존을 위한 이동이 더 많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이동과 문화간 경험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은 최근 동일 문화권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TCK는 분명 청소년기에 해외 거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럼에도 이것은 그들만의 문화라고 이야기할 근거가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TCK를 다문화주의 시선으로 반드시 읽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TCK를 고안한 룻 우심과 이를 확장시킨 데이비드 폴락 모두 미국의 문화적 관점을 가진 이들이면서, 동시에 미국 사회화의 과정을 함께 통과한 이들이기에 ‘다문화주의’가 가진 담론들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을 겁니다. 

     TCK와 다문화주의가 심증적 연관성을 좀 더 증거를 찾아가는 과정이 학문 영역에서 나타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적어도 ‘multicultural education’이라는 영역에서는 매우 낯선 용어라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 놀랐던 것은 문화적 경계를 넘다드는 multiculture의 북미학자들에게 TCK개념이 낯설다는 겁니다. 적어도 북미, 동남아시아의 교육, 사회학과 문화인류학 전공자들에게 TCK가 의외로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라는 건 학문적인 교류가 없거나 의미가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학자들이 좀 더 파고 들어야 할 부분입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