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한국 선교사 자녀교육에 대한 인식 개선의 다문화 교육적 고찰
    연구소 2021. 1. 23. 14:33

    원문링크: ACTSTJ 2020, vol.46, pp. 223-257 (35 pages) 발행기관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ACTS 신학연구소

    이번 연구에서 선교사들에게 진행되는 부모교육에 깔린 전제들은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그 한계를 짚어보려 했습니다. 아마도 그동안 제가 언급하던 TCK 개념의 적합성의 문제제기와도 맞닿을 수 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본 연구에서 생각하던 전제의 한 부분을 이 곳에서 소개할 까 합니다. 

    기존의 선교사자녀 인식은 MK NEST의 부모교육 세미나에서 언급된 것을 보았을 때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부모가 교차문화의 선교지 환경에 있는 자녀들의 특성과 필요를 이해하고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정보와 기법을 습득하도록 돕는다. 

    2. 부모가자녀들의잠재력극대화를위한환경조성에관한지식을가질수 있도록 돕는다. 

    3. 부모가 자녀를 어떤 영역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돌볼 수 있는가를 발견 하여, 더 구체적인 준비를 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지속적인 노력을 한다. 

    4. 한국 선교사들이 동료와 후배들이 처한 자녀 양육의 척박한 현실을 인식 하고, 함께 대안을 모색하며 실천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격려 한다. 

    "요약하면, 선교사자녀 양육과정은 ‘선교사자녀’라는 집단성과 해외에 서 성장한 경험들을 토대로 한 역량을 가정과 개인이 발현시킬 수 있도록 고안된 이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양육과정을 너무 단순화한 결과이며, 동시에 선교사자녀가 처한 개별적 상황을 지나치게 일반화한 결과라는데 있다. 그리고, 선교사자녀에 대한 이해가 소위 “고전적 다문화주의”의 한계 에 머물러 개개인의 가치와 현대사회 적응에 적절한 안내가 어렵다." (본문 233)

     그동안 선교사자녀들이 성장기에 받는 영향들을 너무 문화적 차이에 치우친 나머지 과도하게 포장되었음을 지적하고,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성들이 성장기에 나타난 특성들인지, 문화적 요인에서 오는 것인지를 구별할 수 없다고 평가합니다. 특히 '문화적 차이'라는 용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내용과 용례들이 달라졌습니다. TCK가 처음등장하던 1950년대와 오늘을 비교할 때, '문화'가 갖는 함의는 젠더와 세대, 그리고 종교와 성적 지향 등으로 분화되거나 확장되었으며, 소위 문화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역동성은 그 경계를 확증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한마디로 특정 집단을 문화라는 개념으로 특정짓기엔 너무도 많은 변수들이 존재합니다.) 심지어 한 개인조차 분화되면서 그 안에서 다양한 문화적 경계선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이를  마이크로 컬쳐 라는 용어로 다루기까지 합니다. 

    "동네 놀이터에서 이뤄지는 놀이 행위들과 자녀의 친구 부모들 사이에서 오가는 다양한 정보의 공유, 국가적 돌봄과 자녀가 다니는 기관에서 이뤄지는 또래의 문화, 그리고 정부의 성향 등은 한국 내 아이 들의 정체성과 사회화에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 양육에 있어 이런 영향력을 간과하는 이유는 강의가 주로 부모의 역할에 집중한 나머지 사회와 환경 요인들을 통제된 변인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즉, 자녀의 성장에서 부모의 역할을 한정하여 다루기 때문에 둘러싼 환경의 차이를 간과하거나 인과적 요인으로 착각하게 된다. 우리는 자녀의 성장과 형성에 유전자역 요인과 사회적 요인 사이에 ‘상관관계’는 있을 지 언정, ‘인과관계’를 밝힐 수 없다는 주디스 리치 해리스(Judith Rich Harris) 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본문 234)

    결국 본 연구에서는 일반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부모가 자녀를 둘러싼 환경들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 대한 지적입니다. 사실 우리는 자녀들의 성장에 관해 알고있거나 통제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으며, 맹모삼천지교의 고사가 현실적으로 적절하지 않을 만큼 많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점을 간과합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확증적 편향의 결과인 셈입니다. 특히 선교사들은 자녀 양육에 있어 일종의 기대 모델을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습니다. 

    앞으로 이 부분에 있어, 이미 밝혀진 근대성에 대한 비판과 같은 철학적 사회적 측면에서의비판들을 반영한 교육과 양육 연구들을 검토하고 소개하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 연구에서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아마도 사회적 기초가 부족한 제가 사회학적 도구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부분과 얕은 지식의 문제입니다. 또 하나는 실증연구에 대한 접근의 어려움이 저에게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선교사자녀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셨던 여러 사례들이 있지만, 그 접근이 낳은 부작용 때문에 접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현장에서 벗어나면서 선교사자녀를 만나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그 통로도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점일 겁니다. 그렇지만 이 연구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부족함은 실증연구의 수가 아니라, 이론적 토대들의 제대로 된 검토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는 비단 선교사자녀에 대한 인식만이 아닐 것입니다. 

    다만 제가 이 연구에서 가장 만족하는 것은 한국 선교사자녀를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TCK개념이 에릭슨의 심리학적 접근과 문화근본주의에 바탕으로 등장했다는 점을 언급한 것에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이것이 중요한 점은 선교사자녀를 이해하는데 있어 TCK개념 없이 사회학적 접근과 논의가 가능하다는 점이고, 동시에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사회 안에서의 포괄적인 담론으로 다루면서 "연대"와 "공존"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추후의 연구에서 좀 더 설명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