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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오감레터23호] “이즈미르” 재외국민자녀의 삶과 샤갈ICTRC_letters 2025. 7. 17. 22:28

이동성은 선교사자녀를 포함한 재외국민자녀들의 독특한 특징을 구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자녀의 성장기를 모국의 문화와 삶에서 뿌리내릴 기회를 앗아가는 대신, 새로운 문화와 언어의 자리로 초대되는 축복이라는 이중성을 제공합니다. 재외국민자녀들을 구별하는 두 가지 특징은 이동성에서 기인하는 “뿌리없음”과 “성장기의 교차문화”입니다. 특히 언어와 문화가 뚜렷하게 구별되는 국가 간 이동에서 이러한 특징은 더욱 도드라지며, 이들이 부모의 국가로 돌아올 때 겪는 문화 충격은 다양한 적응 프로그램의 필요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러한 일반화가 이들을 섣부르게 ‘우리와 다른 존재’로 구별하는 우를 범하게 합니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 성장하는 이들은 여러 이유로 장소성과 무관하게 “뿌리없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장소와 가족 사이의 관계가 약화되며 “뿌리”의 지리적 요인은 희미해지고, 개인주의의는 가족 간 수직·수평적 결속을 느슨하게 만듭니다. 여기에 사회적 정황은 문화 전통을 외부 문화와의 밀착과 재생산의 방식으로 혼종성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현실은 해외에서 성장한 이들에게, 한국 내에서는 이미 약화된 시점의 문화를 강화하며 오히려 보수적인 성향을 띄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장기에 타문화를 경험한 이들을 단지 문화적 차이로만 설명하는 것은 오늘날의 사회 복합성을 간과한 구시대적 해석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뿌리”를 향한 인간의 기원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아방가르드의 상징인 샤갈의 작품을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러시아 비테프스크에서 태어난 그는 유대인으로서 러시아 혁명을 피해 프랑스로 이주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야 프랑스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반복된 이동과 이주의 연속이었고, 이방인의 감각은 그의 미술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는 언제나 “비테프스크”, “유대인”, “벨라”라는 추억의 뿌리로 환원됩니다. 그는 낯선 땅에서도 잃어버린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을 소환하고, 오늘의 색을 입혔습니다. 샤갈은 시대의 정치·문화적 상황에 따라 배경색이 달라지지만, 등장하는 인물과 상징, 동물, 표정은 놀라울 만큼 일관되게 그의 내면과 기억을 호출합니다. 그는 단지 초현실주의의 언어를 빌렸을 뿐, 실은 과거를 껴안고 오늘을 살아낸 한 인간의 고백이었습니다. 그의 삶에서 국경은 그가 머무는 육체를 결정했지만, 마음은 언제나 뿌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샤갈의 여정은 재외국민자녀를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그들의 뿌리는 가족과의 여정, 관계, 감정에 있으며, 고향과 같은 물리적 장소는 관계성이 부여된 도구일 수 있습니다. 재외국민자녀의 성장기의 불안한 자아상은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이별과 재적응, 그리고 감정의 층위에서 비롯된 ‘살아낸 이야기’의 일부로, 부족하거나 불안한 상태가 아닌 성장의 여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문화적 독특함이 있을지라도, 인간은 누구나 가장 친밀한 존재로부터의 분리와 독립을 겪으며, 살아가는 여정 속에서, 환경의 색깔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다층적이고 다양함의 유동적인 현대 사회에서 오늘의 삶은 항상 교차적이고, 혼종적이면서 배타적인 양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장기의 정체성은, 단단한 틀보다는 유연하고 다색적인 삶의 결들의 축적된 과정이자 결과가 아닐까요? 샤갈이 그의 그림 속에서 삶의 조각들을 엮어 시간에 따라 다른 색으로 자신을 표현했듯, 우리도 각자의 여정에서 기억을 색으로 물들이며, 여전히 어딘가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것은 나를 물들이는 중요한 부분이며 내 성장의 자양분입니다. 예쁘고 보기 좋게 채색하려 애쓰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묵묵히 덧칠해 가는 여정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나만의 색’으로 칠해진, 지금은 가족의 도화지에 내 결을 칠하면서, 가족의 색-결들에 물들어감을 즐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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