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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오감레터19호]-4 현장에서의 묵상, 그리고...
    ICTRC_letters 2023. 9. 10. 00:24

    이번에 우리가 방문한 선생님들은 튀르키예에 온 지 이제 1년이 된 초임 선교사로 언어를 습득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다른 선생님들에 비하여 우리의 침입(?)에 비교적 여유로웠다. 이들 두 선생님 가정은 비슷한 시기에 파송 훈련을 받았고, 내가 일하는 교회의 협력 선교사이며, 한 팀 안에 있다. 또 각 가정은 비슷한 연령대의 자녀들, 각각 삼 남매, 삼 형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녀들의 연령대도 비슷하다. 지난 2월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인해 본국에서 한 달 동안 대피하여, 동일한 상담 과정을 밟았다. 다시 튀르키예로 돌아왔을 때, 기거하는 숙소들의 안전성을 다시금 점검하고, 한 가정은 균열이 발생한 집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다. 이 과정에서 팬데믹 이후로 튀르키예의 정치적 경제적 문제로 야기된 인플레이션에 더하여, 지진과 이주자 증가로 인한 물가 상승을 온몸으로 경험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녀들의 학비도 두 배 인상되어버렸다.

     튀르키예의 인플레이션은 단지 정치적 오류에서 비롯된 화폐가치 하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지 생활의 안정성과 사회 내 역동성을 위협한다. 우리가 체류했던 2주 동안, 공공 교통비가 50% 증가했고, 2020년 이후로 무려 3배 이상이 올랐다. 여기에 더하여 과거 시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 유입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생한 피난민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으며, 인종차별의 긴장도 높아가고 있다. 메르신도 시리아인과 러시아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주민들의 거주지가 점점 외부로 밀려나면서, 외지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이 높아가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현지 사역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현지인 사역뿐만 아니라, 튀르키예 주변에서 유입된 난민 사역을 포함한 여러 사역이 인종차별 정서로 인하여 어려움에 빠지고 있으며, 주거비와 사무실 임대료, 거주 비용의 급상승으로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다.

    기독교의 유산. 유적을 넘어 구원의 충만함으로

    기획된 여정을 마치고, 우리 가족은 길리기아의 타르수스(성서명 : 다소)와 카파도기아(성서명 : 갑바도기아)지역을 나흘에 걸쳐 다녀왔다. 타르수스는 기독교적으로 바울의 고향으로 유명하지만, 세계사적으로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처음 만난 도시다. 이곳은 비시디아의 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성서명 : 안디옥)로 이어져 있으며, 타르수스에서 20km 떨어진 고산지역에서 발견된 ‘로마의길’ 유적은 바로 그 길의 일부였다. 로마가 돌을 깔아 잘 정비한 이 길은 로마군의 빠른 이동을 목적으로 건설되었지만, 동시에 다른 도시와의 교류가 긴밀하게 이뤄지는 무역로로도 활용되어 연결된 도시들의 발전에 기여했다. 

     카파도기아는 초기 기독교에서 발생한 로마의 박해뿐만 아니라 비쟌틴 시대(4C~12C)에 걸쳐 다양한 박해로부터 피난 온 이들이 신앙을 지켜온 지역들이 곳곳에 존재했던 광야 지역으로,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생긴 기괴한 풍경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지하 공간들이 존재하고, 그 다수가 기독교 초기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종교 양식들과 연결되어 있다. 튀르키예 정부가 이들 기독교 유산을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하고,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 미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한 예로, 괴레메 암굴교회 유적에서 한 정교회 팀이 기도문을 읽고 있는데, 현지 관리인들이 이들을 향해 화를 내며 제지하는 일이 발생했다. 팀은 그 충돌 속에서도 기도문을 다 읽고, 관리자와 언쟁하다가 어딘가 전화를 하고 나서 떠났다. 이를 지켜보던 관리자는 불편한 얼굴로 있다가, 사진을 찍는 관광객을 향해서 “No, Photo!”라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이 상황에서 관광객이었던 나는 여러 가지 질문들이 떠올랐다. ‘그 정교회팀은 왜 이 유적에 와서 기도문을 읽어야 했으며, 관리자는 왜 그들의 종교적 행위를 제지하였고, 플래시를 터트리는 관광객은 무엇을 담고 싶었을까?’ 나를 둘러싼 이 암굴 유적에 부여된 의미는 국가와 관리자들, 각각의 방문객들 사이에서도 모두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는 이런 질문에 이어서 처음 이 암굴을 만들고 사용했던 이들에게 있어서, 이 장소가 갖는 의미, 그리고 프레스코화를 그렸던 의도가 무엇이었을지를 생각해 봤다. 아마도 그들에게 있어서 기억하고 전승해야만 하는 것을 기도하고, 노래하고, 찬미하며, 기억에 새기며 그렸을 것이다. 동시에 그들에게 전승된 성인들을 전사로 그려내야 했던 절박함, 또는 바램과 염원을 담았을 것이다. 다시 오실 예수를 기다리면서,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절박한 상황을 관통하는, 성령의 신비로 피워낸 일상은 적어도, 우리가 이곳에서 부여한 의미, 종교적 모양과 기대, 만족을 위한 유희는 아니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오전의 태양이 이제 막 달구기 시작한 계곡 사이에서 걷는 우리를 휘감은 바람은 우리 가족에게 “왜, 여기에?”라고 묻는 듯싶다. 그리고 문득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이들이 이곳으로 모였던 이유가 혹 이 바람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여느 관광객처럼 데린쿠유 지하도시와 쾨레메 지역의 지하도시와 풍광을 즐겼고, 동굴집에서의 숙박 경험을 더하면서, 여름 감기를 달고 돌아왔다.

    돌아가는 길. 뒤돌아보는 발걸음에 다시…

     이번 여행에서 우리에게는 선교사님 가정을 섬기는 것과 동시에 우리 두 자녀가 선교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갖는 것을 기대하였다. 그동안 선교사의 자녀 양육과 진로 탐색 주제를 혼자 감당했던 것과 달리, 가족이 함께 자신의 재능들을 발굴하고 협력하여 풀어낸 첫 번째 여정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만족하였고, 특히 아이들의 참여는 기대 이상이었다. 두 딸은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반복할 만큼 긍정적이었다. 현지에서 두 선생님 가족과의 경험들, 식사, 놀이, 프로그램 등에서 같이 어울렸던 시간으로 우리 두 자녀의 여름방학을 채웠고, 만족스러워한다. 그들이 준비했던 프로그램들 역시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긍정적인 반응으로 돌아온 것으로 큰 격려가 되었다. 바라기는 부모와 함께 튀르키예 현장들을 기독교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접근하고, 해석했던 과정들도 그들의 인생에 의미 있는 한 획이 되었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정은 두 자녀와 동반한 첫 사역 프로그램으로써 예상보다 거칠었다. 한국에서 준비하는 동안 자녀들과 함께 기도하고, 프로그램을 같이 만들었지만,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이 있을 때면 형식적으로 만남을 하거나 건너뛰곤 했다. “선교 여행 시작!”을 외치면, 여행이 끝날 때까지 긴장하고, 스스로를 강하게 절제하고,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면서, 갈등에 따른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항상 그런 마음의 바램은 가득하다. 그러나 현실은 순간순간 눌린 감정선들이 터지고, 스스로 부족함에 매몰되는 것이 나다. 이런 상황에서  강의하는 순간, 그 전날의 사건 감정들이 솟아오르고, 동시에 감추고 싶은 치부로 다가온다. 그리고, 강의를 준비하거나, 강의하는 순간, 내 부끄러운 경험을 나름 괜찮게 포장하고 싶은 욕망과 자주 씨름하게 된다. 다행인 것은 나에게 있어서 이런 경험이 실수와 실패로 여기거나, 또는 포장하여 반영하는 대신, 그 모든 과정을 내 인생의 여정으로 담고자 노력한다는 점이다. 단지 공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날마다 내 자녀를 인생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수용하기 위해 배우는 여행가로써 말이다. 그렇게 이번 여정을 종료하면서, 선생님들과는 2년 뒤에 다시 방문할 것을 약속하였고, 다음 해는 일단 우리 아이들과 교류할 정도의 연령의 자녀를 키우고 있고, 그동안 우리 가정과 교류가 있었거나 앞으로 지속 가능한 관계가 있을 지역들의 가정들을 우선으로 다녀올 예정이다. 여기에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면 우리 자녀들이 ‘선교지가 생각처럼 힘들지 않아.’ 를 배울 수 있는 곳이면 더욱 좋겠다. 이번 여행에서 배운 것처럼, 우리는 일방적으로 설정한 정보 범위를 전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자녀들의 성장으로 찾아오는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연대하면서, 상호 형태를 추구하는 내일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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